편집자 주. 2026년 8월 6일 산업통상부는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제16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고, 신규 소부장 협력모델 5건 승인과 제3기 ‘슈퍼 을(乙)’ 기업 5곳 선정, 2026년도 소부장 경쟁력강화 시행계획을 심의·의결했습니다. 5년간 91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R&D) 자금과 규제특례·정책금융 패키지가 걸린 이번 결정이 실제로 얼마나 큰 ‘공급망 자립’ 카드인지, 미국·중국·일본·EU가 쏟아붓는 반도체·소부장 지원 규모와 나란히 놓고 산업정책·통상전략·재정평가 세 관점에서 따져봤습니다.

참여자. 사회(경제정책 데스크) · 배 위원(산업정책·소부장생태계) · 한 소장(통상·글로벌 공급망전략) · 유 교수(재정·해외정책 비교평가)
사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두 가지만 짚고 갈까요. 먼저 ‘소부장 협력모델’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의 신속한 자립화를 위해 연구개발뿐 아니라 사업화에 필요한 화학물질 인허가 패스트트랙 같은 규제특례, 정책금융, 세제 혜택, 실증 평가까지 한꺼번에 묶어 지원하는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체계입니다. 단순 R&D 보조금이 아니라 인허가·금융·세제를 패키지로 엮었다는 게 핵심이죠. 그리고 ‘슈퍼 을(乙)’은 대기업(갑)에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협력사(을)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으로 오히려 대기업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강한 을’로 키우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사회. 이게 왜 지금 나왔는지 배경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수출통제가 이어지면서 반도체·배터리 소재의 특정국 의존이 국가 리스크로 떠오른 상황이 이번 시행계획의 배경입니다.
1. 사실관계 — 무엇을 승인했나
사회. 이번 위원회에서 나온 안건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차세대 유리 패키지 기판과 1000W급 EUV 펠리클(생태계 완성형), 공장맞춤형 모빌리티 플랫폼(지역주도형), 차량 인포테인먼트용 국산 SoC와 에너지용 초고성능 다공성탄소(일반형) 등 소부장 협력모델 5건을 승인했습니다. 여기에 한화오션(잠수함용 연료전지 핵심장비)·선익시스템(AI 기반 OLED 자율 증착장비)·이오테크닉스(초고속 레이저 열처리장비)·에코프로비엠(전고체전지용 황화물계 고체전해질)·두산전자사업(위성통신용 저손실 소재·안테나 모듈) 등 5개사를 제3기 슈퍼 을 기업으로 지정했고, 지난해 11월 고시된 제2차 소부장 경쟁력강화 기본계획(2026~2030년)의 2026년도 시행계획도 함께 확정했습니다.
배 위원. 숫자로 보면 협력모델에 5년간 910억 원의 R&D 자금이 배정되고, 슈퍼 을은 과제당 최대 200억 원씩 7년 이상 지원해 2030년까지 15개사를 육성한다는 목표입니다. 단순 합산하면 이번에 확정된 신규분만 5년 기준 약 1,910억 원(910억+200억×5개사) 규모입니다. 올해부터 협력모델을 일반형·생태계완성형·지역주도형 3개 유형으로 나눈 것도 눈에 띕니다. 특히 생태계 완성형은 앵커기업이 국내 밸류체인을 직접 설계하도록 한 게 핵심인데, 이건 지난주 다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화 전략과 같은 맥락에서, 앵커기업 중심으로 공급망을 국내에 묶어두겠다는 산업부의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2. 해외 사례 비교 — 미국·중국·일본·EU는 얼마나 쏟아붓나
한 소장. 규모를 국제 비교로 놓고 봐야 이번 결정의 위치가 보입니다. 미국은 2022년 CHIPS and Science Act로 반도체 제조 보조금 390억 달러와 R&D 110억 달러 등 총 500억 달러를 반도체에 직접 배정했고, 2026년 초 기준 실제 승인된 보조금은 337억 달러, 대출보증은 55억 달러에 달합니다. EU는 2023년 European Chips Act로 최소 420억 유로(민간 매칭 포함 시 최소 860억 유로) 투자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브뤼겔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초까지 회원국이 실제 승인한 국가보조금은 137.5억 유로에 그쳐 목표 대비 집행이 크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같은 분석에서 일본은 167억 유로, 대만도 167억 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고, 중국은 지분투자 방식으로 무려 1,352억 유로를 반도체 생태계에 쏟아부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유 교수. 이 숫자들 옆에 한국의 이번 1,910억 원(1,400원대 환율 기준 약 1억 3,600만 달러)을 놓으면 규모 차이가 명확합니다. 물론 이번 안건은 소부장 협력모델·슈퍼 을이라는 특정 프로그램 한 회차분이고, 미국·EU·중국 수치는 국가 전체 반도체 지원 누적액이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한국은 절대 금액으로 정면 승부하기보다, 앵커기업 중심 생태계 완성형·지역주도형 같은 ‘구조 설계’로 효율을 노리는 전략을 택한 겁니다. 지난달 한-몽골 CEPA 희토류 관세철폐도 같은 문제의식, 즉 원자재·소재 공급망을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다변화하려는 시도였죠.
3. 산업 영향
배 위원. 산업 쪽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슈퍼 을로 선정된 5개사입니다. 에코프로비엠은 전고체전지용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개발에 최대 200억 원을 7년 이상 지원받으면서, 배터리 밸류체인에서 소재 국산화 경쟁의 선두를 다질 기회를 잡았습니다. 한화오션의 잠수함용 연료전지 핵심장비, 두산전자사업의 위성통신 소재·안테나 모듈도 방산·우주항공이라는 고부가가치 영역과 맞물려 있어 파급력이 작지 않습니다. 다만 협력모델 승인부터 실제 양산·매출 반영까지는 통상 3~5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 발표가 곧바로 관련 상장사 실적에 반영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한국새빛가속기 같은 R&D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야 소재·부품 국산화의 속도가 실제로 붙습니다.
4. 소비자·국민 영향
사회.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당장 체감할 변화가 있을까요.
유 교수. 단기적으로는 거의 없습니다. R&D 지원은 최종 소비재 가격이나 서비스에 즉각 반영되는 정책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도체·배터리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낮아지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나 수출 규제 같은 외부 충격이 왔을 때 국내 완제품(전기차, 가전, 스마트폰) 가격 변동성이 줄어드는 효과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부장 생태계가 커질수록 관련 지역(특화단지)의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점인데, 이건 이번 발표에 포함된 ‘연내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 선정’이 실제로 어디에, 얼마나 실행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5. 인사이트 — ‘양이 아니라 구조’ 전략, 통할까
한 소장. 제가 이번 결정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산업부가 앞서 살펴본 예산 규모의 절대적 열세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방식으로 정면 승부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그래서 택한 게 협력모델을 일반형·생태계완성형·지역주도형으로 세분화해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전략입니다. 앵커기업이 밸류체인을 설계하게 하면 정부 자금 1원당 유발하는 민간 후속 투자가 커질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게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이번에 승인된 5건의 협력모델이 3~5년 뒤 상용화 단계에서 검증받을 겁니다.
배 위원. 동의합니다. 그래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늘 그렇듯, 선정에서 탈락한 소부장 기업들의 소외감이나 특화단지 선정 과정의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은 매번 반복돼 온 리스크입니다. 슈퍼 을 1기·2기 성과가 아직 공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3기 선정부터 대기업 계열사(한화오션 등)와 중견 소재기업을 함께 묶은 것도, 산업부 자체 평가보다 외부 검증이 더 필요해 보이는 대목입니다.
6. 리스크와 비판
유 교수. 재정평가 관점에서 걸리는 대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번 1,910억 원은 5년에 걸쳐 분산 지급되는데, 실제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매년 삭감 없이 집행될지부터 지켜봐야 합니다. EU 사례처럼 ‘목표 대비 실제 집행’의 격차가 한국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걸립니다. 제2차 소부장 기본계획(2026~2030) 자체가 아직 시행 첫해라, 200대 핵심전략기술 재정비나 특화단지 선정 같은 후속 절차가 밀리면 협력모델 성과도 늦어질 겁니다. 또 로봇 기반 자동화 실증과 디지털 트윈 테스트 환경 구축처럼 이번 시행계획에 포함된 인프라 투자는 별도 예산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910억 원 R&D 자금과 별도인지 포함인지 산업부 발표만으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금 배 위원께서 지적하신 1기·2기 검증 공백 문제와도 이어지는데, ‘세계 최고 수준 기술 확보’라는 목표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다음 위원회에서는 1기·2기 성과에 대한 중간 평가 결과부터 공개돼야 한다고 봅니다.
7. 결론
사회. 정리하면, 방향 자체는 세 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만 미국의 약 250분의 1, 중국의 약 1,000분의 1 수준의 재원으로 ‘구조 설계’와 ‘선택과 집중’에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이번에 승인된 5건의 협력모델과 5개 슈퍼 을 기업이 실제 상용화·수출 성과로 이어지는지가 다음 체크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연내 예정된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 선정 결과도 함께 지켜봐야겠습니다.
출처
- 정부, 소부장 협력모델 5건 승인…5년간 R&D 910억 원 지원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정부, 소부장 협력모델 5건 추가…‘슈퍼 을’ 기업도 신규 선정 (아시아경제)
- CHIPS and Science Act — funding breakdown (Wikipedia)
- European Chips Act — Bruegel 2026 comparative funding analysis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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